<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말은 말하는 자가 자신의 의견이 완전히 정확하지 않거나 다른 타당한 관점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전제하에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런 면에서 이런 열린 마음으로 다른 관점을 인정하는 것이 우리의 사회를 보다 나은 관계사회로 정립할 수 있다는 생각에 저자의 소개와 줄거리 그리고 나의 느낀 점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도서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저자 소개
저자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는 1961년 스웨덴 태생으로 스톡홀름 경제대학에서 금융과 경제를 공부한 뒤 26살에 다국적 기업 임원으로 지명되었지만 퇴사하고 태국 밀림 숲 속 사원으로 들어가 17년간 수행한 파란 눈의 스님이었다. 그의 법명은 '지혜가 자라는 자'였다. 17년간 승려로서 엄격한 계율까지도 편안해지는 경지에 이르렀을 때 그는 마흔여섯에 승복을 벗었다. 세상으로 나온 후 혼란스러운 삶 속에서도 마음의 고요함을 지키며 살아가는 법을 전했다. 법명 그대로 그의 지혜는 진정한 자유와 평화에 대한 통찰력을 깊이 있게 했다. 그러던 중 2018년 루게릭 병을 진단받고 몸의 기능을 잃어가면서도 사람들에게 마음의 고요함 속에서 서로의 관계를 유지하고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용기와 위로를 전했다. 이 책을 집필하게 된 것은 스웨덴 한 기자가 던진 질문 때문이었다. 17년간 수행하면서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었다. 그는 그 질문을 깊게 생각한 후 입을 열었다. 바로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였다. 그리고 2022년 1월 그는 망설임도 두려움도 없이 떠난다라는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이 책은 그가 남긴 유일한 책이기도 하지만 그는 제목만으로도 숲 속의 현자라고 불려도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줄거리
숲속의 현자는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는 것으로 사람들의 마음에 경종을 울린다. 세상에는 갈등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다름이 존재한다. 그 결과 싸움이 일어나며 불협화음으로 혼란스러운 사회가 된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럴 때 한 발짝 물러나 상대방에게 귀를 기울인다면, 즉 상대의 의견이 옳을 수도 있다는 관점에서 귀를 기울인다면, 그것은 바로 내 견해가 맞을 수도 있지만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서 내 견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그럴 때 갈등이나 불협화음은 사라질 수 있으며, 그것은 마음속에 '마법의 주문'을 던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주제는 '옳다는 것이 결코 핵심이 아니다'라 서로의 존재 그 자체가 핵심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이 모든 것은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지혜라는 선물을 꺼내게 되면, 혹은 그 선물을 올바르게 꺼내는 것이 아니라 버려버리는 각자의 의제 혹은 마음에 있다고 한다. 이 지혜는 시대를 초월하며 특정한 종교에 한정되니 않는다고 말한다. 이 지혜에 대한 그의 생각을 실행하는 면에서는 그도 솔질한 마음을 전달하는데, 갈등의 시점에서 이 마법의 주문인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바로 떠올리기가 어렵다고 한다. 하지만 일단 그 지혜를 꺼내기만 한다면 삶을 더 효과적으로 겸손하고 건설적인 방향으로 운전대를 잡게 된다는 한다. 참으로 지혜인 듯하다. 마지막으로 책 속에서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제가 추구하는 건 의식적 현혼 상태, 즉 지금을 온전히 의식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표현하면 마치 조금도 긴장을 풀면 안 되는 힘들 일처럼 들립니다. 그런 이유로 저는 알아차림이라고 말하는 게 더 좋습니다." 우리는 이 알아차림이 생각, 느낌, 신체 감각등 모든 것이 현재를 집중하게 되는 것 같다. 알아차림이 서로 교차한다고 해서 모든 것이 옳은 것들로만 이루어진 세상이 아니기에 각자 가지 속도에 맞춰 옳고 그른 것을 경험해 나가라고 저자는 우리에게 위로를 주고 있는 것은 우리가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라 보인다.
느낀 점
제목에서 주는 느낌은 정치, 종교 그리고 유리에 대한 논의 와 같이 해석이나 의견에서 불일치가 있을 수 있다는 상황에서 참으로 유용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역사 속에서도 그리고 현시대의 사회 속에서도 우리는 불일치가 늘 존재해 왔기에 역사라는 선을 그려왔기 때문이다. 서로의 의견이 완전히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고, 다른 관점이 옳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기에 그려진 불협화음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숲 속의 현자라는 것을 인정하게 만드는 문구 바로 책의 제목이다.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것은 상대가 맞을 수 있다는 것이며, 상대가 틀릴 수 있다는 것은 내가 맞을 수 있다는 것이다. 모호하게 들리겠지만 우주 만물에 딱 떨어지는 답을 가지 삶이 있겠는가? 그것은 아닐 것이다. 삶의 형태는 우리의 얼굴이 모두 다르듯 다양한 형태를 유지하기에 모두가 함께 공존한 다는 것은 서로를 인정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오직 열린 마음을 함양하고 대화와 이해를 유도하는데 크나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우리는 서로의 견해를 절대적인 진실이 아닌 서로의 개인적인 관점이라는 것을 인정한다면 전쟁, 즉 불협화음은 일어나지 않는 사회를 구성하고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